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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facebook.com/leejinyeol/posts/546069432098843

이진열님 페북 글 퍼옴-


영아를 영상물에 노출하지 마라.

나는 지금껏 아이가 어떤 영상물에도 노출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스마트폰, 테블릿, 노트북 등 이동식 영상매체가 발달한 요즘
영상물을 보여주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우리 부부는 육아 및 교육에 대한 서로의 의견을 나누는
일종의 '교육회의'를 가졌다.

교육에 대한 서로의 의견, 콕 집어 말하자면 주로 내 의견은
아이의 지적 역량이 발달하기 전, 
특히 정보 분석 기관인 전두엽이 최소한으로 발달하기 전에는
어떤 영상물에도 아이를 노출시키지 말자는 것이었다.
아이가 한 번이라도 영상물에 노출되면,
듣기나 읽기에 비해 훨씬 자극적이고 충동적이면서
동시에 그 정보를 해석하는데 큰 노력이 필요하지 않으며,
어쩌면 해석할 겨를도 없이 새로운 정보가 계속 쏟아지는,
아이가 감당하기에 너무 큰 자극인 영상물에 대한 욕구가 생기게 되고,
결국 그것에 중독되어 듣기나 읽기를 멀리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이가 영상물을 보지 않도록 하는 데에는 상당한 힘과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낮 시간 동안 주로 아이를 돌보는 아내 역시
그 지루한 시간 동안 어떠한 영상물도 볼 수가 없게 된다.
게다가, 자기 주위의 모든 사물과 사건에 대해 궁금증을 보이는 아이의
끝 없는 지적 호기심에 쉴 세 없이 반응해야 한다.
한 마디로 아이가 잠들지 않는 한 쉴 틈이 없다는 말이다.
나 역시 퇴근 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함께 그림을 그리고, 몸을 부대끼며 놀아주다보면
한 두시간이 훌쩍 지나버릴 때도 있다.

또한 집을 나서면 여기저기 켜져 있는 티비나 광고 등을 피하려면
계속해서 아이에게 책 읽기, 노래부르기, 자연 관찰하며 설명하기 등의
영상물로부터 아이의 관심을 돌이킬 수 있는 유효한 자극을 '제공'해야 한다.
때로는 아이의 몸을 돌려 안거나, 해당 장소를 벗어나는 등
물리적인 조치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이런 사실까지도 아내에게 설명하면서 아내의 동의를 구했고,
고맙게도 아내는 나의 교육 방식에 동의를 해주었다.
저녁에 한 두시간 부모님 방에 놓여진 티비를 보시는 부모님께서도 동의를 해주셔서
티비를 보시다가도 아이가 내 부모님을 찾아가면 얼른 끄시고 아이와 놀아주신다.

우리는 아이 앞에서 스마트폰을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며,
통화나 아이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을 일이 있어 
아이 앞에서 스마트폰을 써야 할 때면 아이가 스마트폰에 관심을 가지는데
그 때마다 '이건 어른들이 쓰는 거에요. 엄마꺼니까 엄마주세요.'라고 말해준다.
그래서 처음에는 보여달라고 하던 아이도 '이건 엄마(아빠)꺼에요.'라며 우리에게 주곤 한다.
다만, 자기를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은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잠깐 보여주고
'이제 그만' 하며 다른 놀이나 책 읽기로 관심을 돌린다.
익숙해진 아이는 떼를 쓰거나 고집을 부리지 않고 이내 다른 놀이에 빠져든다.

그래서 25개월 간 내 아이는 아직 뽀로로나 치로 등의 영상물이나,
'혹자가 교육에 유익하다고 광고'하는 스마트폰 앱이나, 
티비 프로그램 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대신 아빠나 엄마가 불러주는 이 백곡 이상의 동요를 듣고,
이 백권 이상의 책을 반복해서 읽었으며, 수 백장의 종이에 그림을 그렸다.
길을 가다 보이는 식물과 꽃, 간판과 사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저녁이면 오늘 하루 뭘 하고 놀았는지 아빠와 대화를 한다.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아이가 설명할 수 있게 유도하고,
아이가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

동시에 아이를 어린아이로 대하지 않고, 어른을 대하듯 한다.
모든 일에 대해 어른을 대하듯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며, 양해를 구한다.
나는 항상 아내에게 '아이를 어린 아이로 대하지 말고, 다 큰 성인으로 대하세요.
함부러 말하거나 못 알아들을거라 무시하지 말고,
어른을 대하듯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세요.'라고 말한다.
그래야 아이가 부모의 행동과 제한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넌 몰라도 돼.', '이건 어른들의 일이야.', '니가 뭘 안다고.', '넌 시키는 대로 해.'와 같은 말은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할 뿐 아니라 아이의 사고력과 의지와 이해력을 손상시킨다.

아이에게 영상물을 보여주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그런 영상물이 가지는 '교육적 효과'에 대해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영상물이나 스마트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에 비해 
사물에 대한 호기심, 사물이나 사건을 보고, 듣고, 분석하는 능력 등
아이의 지적 성장이나 발달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훨씬 더 크다고 믿는다.
어쩌면 그런 것들을 통해 아이가 '교육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건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고, 
사실은 부모가 '아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 
다시 말해 큰 죄책감 없이 잠시 잠깐 '아이를 방임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아이를 모니터나 스마트폰 앞에 두는 건 아닐까.

아직 여러 자극을 선별해서 받아들이거나 자극들에 대한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방어기전이 발달하지 않은 어린 아이들에게
화려한 영상이나, 신기한 스마트폰은 약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다.

사람이 한 번 태어나면 죽기 전까지 반복해야 하는 공부, 또는 학습은 
정보를 받아들이고, 분석해서 저장한 후 적용하는-상황에 맞게 다시 꺼내놓는- 과정을 포함한
다.
수용, 분석, 저장, 적용이라는 일련의 과정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빨리 수행하는 지가
학습 능률, 수학 능력을 결정하는 핵심 사항이다.

아이를 사랑한다면, 콕 찝어 말해 아이가 공부를 잘 하길 원한다면,
생각하는 힘, 즉 사고력을 키워줘야 한다.
그런데 아무런 생각이 필요 없는 자극을 계속해서 반복 주입하다 보면
아이는 생각하는 능력을 키울 수 없게 된다.

책을 읽어주고, 책 없이 이야기를 해주고, 노래를 불러주고, 
함께 자연을 관찰하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영상물을 보는 것은 아예 위의 것들과 비교할 거리가 못된다.

아이의 사고력은 과외나 학원 수업을 통해서는 절대 향상될 수 없다.
그러한 것들은 당장 눈 앞에 놓여진 문제를 해결하는 조그만 팁을 줄 수 있을 뿐이다.
아이가 학교에 가기 전, 특히 만 3세 이전에 아이의 사고력을 키워줘야 한다.
책을 좋아하도록 도와주고,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사물과 사건을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것이 십대 이후에 수십, 수백만원을 들여야 하는 과외나 학원교습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다.
나는 내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아이가 책을 좋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20년 후의 한국 사회가 매우 걱정스럽다.
아직 목을 가누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 시절부터
영상물과 스마트폰에 '중독'된 아이들이 자라 이십대가 되면 이 사회가 어떻게 될지...
어린 시절 놀이를 통해 양보, 승리와 패배, 교감, 우정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 어른,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중독되어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세상이란 어떤 곳일까...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건 아이를 잡스가 되게 하는 게 아니라
훗날 아이가 잡리스가 되게 하는 행동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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