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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옴. 황의록 페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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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에세이 57

큰 아이는 친구들을 좋아했다. 집에는 언제나 친구들로 가득했고,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 내외는 그런 모습을 좋아했고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데 따로 허락이 필요 없었다. 우리가 걱정하지 않도록 어디에 있는지만 말해주면 되었다. 큰 아이는 별로 크지 않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운동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축구선수, 야구선수로 활동하기도 했고, 뛰어난 실력은 아니지만 지역신문에 몇 번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중학교를 평범하게 보내고 난 큰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더니 3년 내내 가수가 되겠다며 단짝친구와 노래방을 드나들었다. 함께 녹음도 했다. 나는 음치에 가깝고 제 엄마도 노래는 별로인데 아들이 노래를 잘 할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도 중요한 것은 잘 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좋아한다는 사실이기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평생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 하겠나? 말릴 이유도 없었고 실제로 우리 부부는 한번도 말리지 않았다. 공부 좀 하라고 다그친 적도 없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 이래 한번도 성적표는 본 적이 없고 가져온 적도 없었다. 한마디로 잘 놀았다.

대학시험에 떨어졌다. 내가 보기에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데 큰 아이는 몹시 실망했다. 그 때, 내가 그 아이를 불러 말했다. “아들아, 낙방을 축하한다. 수고했다. 우리 낙방축하 여행을 가자.” 그 아이는 누굴 놀리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처다 보았다. 아무리 공부를 좀 안 했기로서니 낙방을 축하한다고? 그렇잖아도 기분이 꽝인데 비꼬기까지 하시나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내가 진지한 얼굴로 다시 설명을 했다. “아들아, 놀리는 것이 아니다. 네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도 아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언젠가는 실패를 맛보게 된단다. 이왕에 실패를 경험할 바에야 일찍 하는 것이 좋지 않겠니?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도 있고, 또 실패하는 사람들을 무시하지도 않을 테니 주변에 친구도 많아질 거야. 중요한 것은 네가 그렇게 놀았는데도 대학에 무난하게 합격했다면 너는 앞으로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이번 실패는 네 인생에 보약이 되지 않겠니? 이 정도면 축하할 만 하지 않아?” 아들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둘째가 옆에서 거들었다. “나도 내년에 떨어질 테니 함께 여행가면 안돼요?”

그렇게 해서 우리 삼부자는 제주도로 날라갔다. 5박6일 동안 정말 신나게 놀았다. 공부얘기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그런데 돌아오는 비행기 속에서 그 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아버지, 제가 노래를 좋아하기는 하는데 정말 잘 하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가수가 되어 노래로 먹고 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래? 그럼 어떻게 할건데?” “노래는 취미로 하고 일단은 대학엘 들어가야겠어요. 종합반에 들어가 재수를 하고 싶은데 학원비 좀 주시겠어요?” 나는 말했다. “아빠는 언제나 네 편이야. 무엇이든 네가 결정하면 나는 도와줄 거야.” 일년간 열심히 학원에 다니며 공부를 하더니 이듬해 아들은 서울대 전자공학과에 들어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재수를 하는 동안에도 노래방에 가는 일은 그만두지 않았단다. 

아들은 대학생활을 정말로 즐겼다.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그 바쁜 중에도 노래, 운동,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은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일학년을 끝낸 어느 날 아들이 내게 상담을 요청했다. “내가 천재인줄 알았어요. 그렇게 놀았는데도 일년 재수하고 이 대학에 들어왔으니까요. 그런데 대학에 와보니 머리 좋은 애들이 널려있어요. 제 친구는 저랑 맨날 함께 놀고 늦게 서야 기숙사에 들어가는데 시험만 보면 항상 일등을 하는 거예요. 처음엔 나 몰래 따로 공부했나 의심했는데 수업시간에 교수님께 질문하는 것을 들어보니 나랑은 차원이 달라요. 완전 천재예요. 나는 개를 절대로 이길 수가 없어요.” 

나는 말했다. 친구가 일등 하면 좋지 뭘 그래. 왜 꼭 네가 친구를 이겨야 하니?” “아버지, 그래도 지는 건 싫단 말입니다.” “그래? 그럼 방법이 있긴 있지. 네 친구도 일등하고 너도 일등 하는 방법 말이야” “세상에 그런 방법이 어디 있어요?” “있고말고. 듣자 하니 그 친구는 앞으로 학자가 될 공산이 큰 것 같다. 머리 좋지 깊이 파고 들기 좋아하니 박사도 되고 교수도 될 것 같아. 그럼 너는 폭을 넓혀 봐. 공대생들의 문제점이 뭔지 아니? 깊이는 있지만 대부분 시야가 좁다는 거야. 터널비전에 갇혀있어. 그러니 네가 전공을 충실히 공부하면서도 시야를 넓히고 안목을 키우는 노력을 한다면 아마 따라 올 사람이 없을 꺼야.” 그 때부터 아들은 전공분야 말고도 폭넓게 공부를 했다. 

공대를 졸업했음에도 아들은 베인앤 캄파니라는 외국계인 경영전략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다. 기술을 이해하면서도 생각이 열려있다는 칭찬을 받았단다. 세계적인 두뇌기업이고 당연히 주 5일근무가 원칙이지만 조간신문을 들고 퇴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주말도 집에서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채용인원이 많지도 않았지만 그 중에서도 실적에 따라 매년 절반 정도를 탈락시키는 대신 살아남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연봉과 국내외에서 꿈도 꿀 수 없는 학습기회를 주었기에 최선을 다 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체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고는 도저히 단 몇 달도 견딜 수가 없을 정도였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면 제풀에 떨어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들은 이 모든 것을 잘 해 냈다. 신앙심도 깊었지만 나는 운동 좋아하고 친구들과 잘 논 것이 이 모든 것을 이길 수 있게 도와 주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공부를 통해 키운 사고의 유연성과 열심히 놀면서 키운 체력이 없었거나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없었다면 과연 이런 직장생활을 감당할 수가 있었을지 모르겠다. 

아들은 그곳에서 몇 년을 근무하고 난 뒤 회사가 주는 장학금으로 스탠포드에 MBA를 공부 하러 갔다. 다른 학생들은 MBA가 힘들다고 했지만 우리 아들은 전에 회사에서 일하던 생각하면 이것은 봄소풍에 불과하다고 했다. 금융뷴야 MBA를 취득하자 마자 뉴욕 월가에 있는 금융회사가 전에 다니던 회사가 대준 장학금을 모두 물어주고 그 아이를 데려 갔다. 수년이 지난 지금 그 아이는 그곳 월가에서 스스로 투자금융회사를 창업해서 사업을 하고 있다. 

내가 아들을 위해 투자한 것은 일년간 재수비용을 대준 것이 전부다. 유학비용도 단 한 푼 대준 것이 없다. 그런데도 아들은 내가 제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랜다. 언제나 저를 믿어주고 기다려주었기 때문이란다. 함께 노래를 불렀던 고등학교 단짝친구 김동률군(전람회)은 진짜로 유명한 가수가 되었고, 대학친구도 서울대 교수가 되었다. 우리 아들도 제 회사의 사장이 되었으니 모두가 일등이 되지 않았는가? 아들은 내 환갑 생일에 최고급 벤츠를 선물했다. 

PS 뻔한 자랑질이지만 곱게 봐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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